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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고민하던 대학 시절

by 소소한이야기~!@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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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1. 대학시절의 마르크스는 매우 낭만적인 생각을 지닌 대학생이었다.

그는 철학과 역사에 몰두하는 한편 특히 시에 미치다시피 하여

직접 시를 쓰기에 했다. 그는 본대학에서 트리어 출신 학생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했고, 한 번은 지나친 음주와 소란 때문에 대학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베를린대학에서는 학우들로부터 꾼 돈을 갚지 않아 여러 차례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문에 대한 울분과

사회에 대한 분노가 마르크스의 깊은 내면에  숨어 있으면서 가끔 분출했던 것이다. 베를린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마르크스는 철학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시인이 될 것이냐를  놓고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냈다.

 

 

2. 그는 연극 비판 잡지를 구상하기도 했고 연간 시집을 기획하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직접 쓴 시와 노래를 세 권의 노트에 써서 약혼녀 예니 폰 베스트팔렌에게 보내기도 했다.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너무 차이가 날 정도로 부유하고 내조를 별로 잘할 것 같지 않은 예니를 장래의 며느릿감으로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마르크 스는 예니와 약혼하고 6년 넘게

인내하다가 드디어 결혼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밤잠을 설치며 세상의 고뇌를 혼자 짊어지는 듯 사랑과 절망과 동경을 

넘나들면서 수많은 시를 썼다. 물론 시 쓰기에 관해서 별도로 수업받은 일이 없으므로, 그의 시들은 열정과 감수성이 넘치는 낭만적 시들이긴 했지만 시의 형식과 테크닉을 제대로 갖추지는 못했다. 그가 쓴 시는 전원시와 민요조의 설화 시가 

대부분이었으며 신비, 동경, 꿈, 밤의 사랑, 창백한 처녀 등을 노래했다. 다음의 시는 당시 마르크스가 썼던 시 중 일부 내용을 옮긴 것이다

 

 

 

 

3. 영혼이 강하게 붙잡는 것을 결코 나는 편히 이끌고 갈 수 없고

결코 나는 편히 이끌고 갈 수 없고 결코 나는 조용히 이끌고 갈 수 없고

결코 나는 조용히 쾌적하게 머물 수 없으며 쉴 새 없이 돌진한다.

 

 

 

4. 나는 모들 것을 얻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신의 총애 모두를 그리고 과감히 지식 난에 파고들며

노래와 예술을 붙잡고 싶다.

 

 

 

 

5. 베를린대학 시절에 마르크스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시인이 되고 싶은 욕망, 예니와 결혼 약속은 했으나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 청년 헤겔주의에의 참여,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아버지의 기대 등은 마르크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마르크스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는 아버지가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너를 소모 시 기지 마라. 하나님의 말에 의하면 너는 아직 너와 네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그리고 만일 내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인류의 안녕을 위해서 아직 많은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6. 아버지는 비록 겉으로는 강요하지 않는 척했지만 내심으로는 마르크스가 법학을 공부하여 가능한 한 빨리 가족에게 보퉁이 되어야 한다는 암시를 보다 강하게 던져주고 있었다. 베를린대학으로 옮긴 해인 1836년 마르크스는 자기보다 네 살 많은 예니 폰 베스트팔렌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에 약혼했는데,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여러 차례 편지를 통해서 예니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어떻게 보면 마르크스와 아버지의

관계는 이때 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1838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마르크스는 아버지와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으며 아버지의 기대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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