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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마르크스의 친구이자 동반자로 남았던 엥겔스

by 소소한이야기~!@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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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마르크스를 경제 적은 후원, 그의 명성도 끝까지 지켜주다

 

 

 

마르크스가 런던으로 이주한 이후부터 엥겔스는 자신이 쓰고 남은 돈은 모두 마르크스에게 보냈다. 액수가 많지 않은 돈이지만 마르크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돈이었다. 엥겔스의 아버지는 맨체스터에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엥겔스를 관리자로 임명하자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이전보다 여유 있는 후원금을 부칠 수 있었다. 가끔 엥겔스는 공장 경여의 무리를 무릅쓰고 마르크스에게 충분한 돈을 부치기도 했다. 엥겔스는 아버지와 함께 회사의 공동소유자가 되면서부터 어예 런던에 눌러살면서 마르크스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1869년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매년 충분한 연금을 주기 이전까지 마르크스 가족을 빈곤 그 자체의 삶을 힘겹게 꾸려나가야 했다. 마르크스는 아내 예니는 발이 닿도록 전당포를 들락거려야 했고, 마르크스는 체면 불고하고 삼촌에게 라살레에게 그리고 엥겔스에게 수시로 적은 액수의 돈을 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런던에서의 경제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마르크스가 당시 쓴 편지의 글을 간추려 보면 잘 알 수 있다.

   내가 비즈니스를 할 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중한 친구여 모든 이론들은 회색빛이고 오직 비즈니스만이 초록빛이네. 아쉽게도 나도 너무 늦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구먼

 

 

 

절망과 고통과 끔찍함을 이런 상황에서 겪어야만 하네. 이를 차마 글로 쓸 수 없다네

 

 

 

내 아내 예니가 아프네. 딸도 아프네. 나는 무일푼이라 의사를 부를 수도 없네 거의 열흘 동안 나와 식구들은 빵과 감자만으로 끼니를 때웠네. 오늘은 끼니를 때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네. <뉴욕 데일리 트리뷴> 지의 데이너를 위한 논문을 쓰지

않았네. 왜냐하면 동전 한 닢 없어서 미리 신문을 사서 읽지 못했기 때문이네. 빵집  우유가게 홍차 정육점에는 빚만 있네.

   

 

마르크스가 어려울 때마다  엥겔스가 부족하나마 필요한 돈을 보내 주었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재정적 어려움을 

하나도 숨김없이 엥겔스에게 털어놓곤 했다. 1863년 독일의 트리어에게 어머니가 죽자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두 시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가 왔네. 운명은 어머니가 자식을 요구하네 이미 나 자신은 외발로 땅 아래서

있네 어떻게든 현재  상황에서는 돌아가신 분보다는 내가 더 필요하네. 유산 때문에 트리어로 가지 않으면  안 되네. 지금 자네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되네. 내가 트리어로 여행할 수 있을 만큼만 즉시 돈 좀 보내주게.

 

 

마르크스는 엥겔스의 재정지원을 수시로 받았지만 생계비와 자식들 양육 바 그리고 아내  예니의 신경질환 치료를 위해서

 돈을 받은 즉시 모두 지출하는 바람에 항상 빈곤을 면하기 어려웠다. 마르크스는 먹고살기조차 어려운 가운데도 하녀 헬레네

데무트를 내보내지 않았다. 자신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도 늘 병마에 시달렸기에 집안일을 보살필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렐레네 데무트에게 아들 프레데릭(프레디) 데무트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레데릭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절은 나이엔 세 사을 떠났다. 프레데릭은 잠시 미국에 가서 머물다 독일로 돌아와 하급관리를 하다가 병들어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프레데릭은 어머니 헬레네 데무트의 성 데무트를 쓰고 있었던 관계로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마르크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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