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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처럼 죽어가는 아기를 붙들고 통곡하는 마르크스

by 소소한이야기~!@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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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오, 불쌍한  내 아기, 프란치스카! 못난 이 아바를 용서해다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궁핍의 절정을 맛보아야 했다. 마르크스는 철저한 무산계급에 속했고 영국 정부는 급진 자유주의자요 사회개혁가이며 공산주의자인 마르크스에게 국적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

마르크스는 아내와 하녀 헬레네 데무트 그리고 세 명의 자녀와 함께 두 칸짜리 방에서 기거했다. 마르크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찢어지게 가난했는지는 그가 외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수시로

푼돈이 필요할 경우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겼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다시 옷을 찾았다. 종이 살 돈이 없을 때가 많아

마르크스는 원고를 작성하지 못해 자주 애태웠다. 이런 상황에서 딸 프란치스카가 태어났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곧 죽었다. 당시 예니 마르크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남처럼 차갑게 우리 옆에 누워 있는 작은 천사 옆에서 우리들은 한없이 울었습니다. 우리가 가난의 심연에 있을  때

사랑하는 아기가 죽었습니다. 그때 나는 얼마 전 우리를 방문했던 근처의 프랑스인 망명객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는 너무도  친절하게 즉시 이 파운드를 내게 주었습니다. 나는 그 돈으로 작은 관을 사서 불쌍한 아기를 그 안에

넣어 묘지에 묻을 수 있었습니다. 내 작은 아기는 세상에 태어날 때 요람도 구경하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편히 잠들 작은

안식처도 찾지 못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런던 생활은 순간순간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여서 그는 오랜 기간 구상하고 기획해왔던 <자본론>을 제대로

집필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이미 몇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항상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며 가정적으로 문제가

많았기에 제아무리 국민경제 연구에 몰두하려 해도 연구와 집필이 그의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수시로 두통, 눈 충혈, 관절염 등도 고통스러워했다. 여러 가지 질병으로 밤잠을 제대로 집필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이미 몇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항상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며 가정적으로 문 게가 많았기 때문기에

제아무리 국민경제 연구에 몰두하려 해도 연구와 집필이 그이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수시로 두통, 눈 충혈, 관절염 등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여러 가지 질병으로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원래 튼튼한 체질이 아닌 데다가 1848년 런던으로 이주한 이후부터 간과 신장이 특히 나빠져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마르크스의 건강은 그의 무절제한 식습관과 생활로 더욱 악화되었다. 그는 낮 동안 쉬지 않고 연구했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집필할 때가 많았다. 그는 식초에 절인 시큼시큼한 오이 훈제 생선과 함께 맵고 짠 음식을  좋아했는데

이것은 모두 간에 좋지 않은 음식들이었다.

 

 

마르크스는 포도주를 유독 좋아했고 의사가 마시지 말라는 맥주도 즐겼으며 게다가 골초였다. 양질의 담배를 살 충분한

돈이 없었던 마르크스는 언제나 냄새 독한 싸구려 담배를 피웠다. 마르크스는 습진이나 종기 때문에 제대로 걷거나

앉지도 못할 때가 많았다. 1855년부터  마르크스는 전식이 있었고 이것이 결국 폐결핵의 원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형제자매들과 자식들 중 많은 수가 일찍 폐결핵으로 죽은 것을 보면 폐결핵에 잘 걸리는 체질이 마르크스 가문의 유전적 요소였으리라고 추측된다.

 

 

병마와 매일 싸워야 하는 마르크스는 성격은 원만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신경이 곤두서서 늘 예민했으며 적대자에게

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사람들에게도 날카롭게 비판하기 일쑤였다. 그는 걸핏하면 화를 냈고 참을성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항상 불만에 가득 차서 닥치는 대로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삶의 반평생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함께 저술활동을

한 엥겔스에게까지 불만을 토로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마르크스가 그래도 1849년부터 1883년까지 30년이 넘는 기간을 런던에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엥겔스의 도움 덕분이었다. 엥겔스의 후원 마르크스의 삶이란 존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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